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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츄 소설] 마니또 ; 비밀친구

자신에게 헷갈리는 장난을 거는 다자이에 설레여 마니또 역할에 혼란을 겪게 되는 츄야의 이야기.

*학스토 기준으로 설정은 살짝 다를 수 있음. 시리어스 느낌 다분.


마니또 ; 비밀친구


'마니또'란 비밀친구라는 의미로, 지목된 대상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비밀리에 잘해주고, 덕을 본 대상이 또 다른 마니또 지목 대상에게 받은 만큼 베푸는 친목 놀이.





아직까지 매미와 귀뚜라미들이 울어대는 여름의 끝자락. 츄야는 고민에 빠졌다. 개학과 함께 2학기란 후반전이 시작되며 다시금 학우들과 잘 지내란 의미로 담임선생님은 마니또 놀이를 제안한 것. 모두 제비뽑기를 완료한 후 유별나게 소란스러워졌지만 대다수의 학우들 표정엔 웃음이 가득했다.단 한 사람, 츄야만은 제외하고.


전학 온 지 얼마되지 않아 여름방학이 찾아왔고,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지 못한 채 2학기란 시작종이 울리고 말았다. 츄야는 차가운 이미지를 갖고 있어 학우들이 친해져보려 말을 걸어도 잘 섞지 못했다. 갑갑함에 쉬는 시간 중 반 이상은 옥상에서 보내곤 했다.

담배 한 개피를 꺼내 입에 물었다. 하얀 연기가 시야를 흐릴 때쯤 츄야는 고독을 지울 수 있었다. 그 때 였다. 누군가 다가 온 인기척이 느껴진 동시에 제 손에 들려있던 담배는 사라졌다.
"이런 건 건강에 해롭다네." "뭐야? 너 나 아냐? 됐으니까 빨리 내놔." 스트레스에 제 몸이 꽉 조여질 때쯤..


"나카하라 츄야.

같은 반인데 이름을 모를 리 있겠나?"


나지막한 목소리가 츄야의 이름을 정확히 불렀고 그 소리는 제 귀를 간지럽혔다. 교우관계도 원만하고 주위로 알아서 사람이 몰리는 다자이가 친구들과 말 하나 섞지 않는 자신의 이름을 정확하게 외우고 있다니. 놀라선 고개를 들어 저를 내려다보는 눈 앞의 시선과 마주하자, 여름 햇살을 가린  구름 덕에 시원한 바람이 몸을 타고 스쳤다. 씨익 웃어보인 그가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뚝 하강시키곤 발로 짓이겨 시뿌연 연기를 잠재웠다. 뭐하는 짓이냐며 화내려던 저를 무시하고 그는 저 너머를 바라보며 얘기했다. 담배가 바닥에 떨어지듯 자신도 여기에서 만족스럽고 건강한 죽음을 맞기 위해 여러 번 자살기도를 했다고. 운명이 야속해 나무에 걸리거나 화단에 떨어져 번번히 살아나버렸다며 치료로 인해 여러 번 유급을 했다는, 일반 사람이라면 이해하기 힘든 얘기를 제 앞에서 너스레 떨 듯 늘어놓았다. 인기 많고 항상 밝아보이던 그가 왜 그런 생각을 해왔는지 츄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다음 날 학급 임원 선거가 열리고 과반수 이상의 압도적인 표를 받으며 다자이는 실장이 되었다. 열심히 노력하지도, 수업시간에 바깥만 응시하던 그가 한 학급의 대표를 맡게 되다니. 역시 자신의 우려대로 다자이는 여전히 학급일에 무관심했다. 임원들 회의에도 불참하기 일쑤였지만 나머지 임원들은 그를 책망하지 않았다. 알면 알수록 이해하기 힘든 나날의 연속에서 다자이와는 옥상에서 만난 그 날 이후 지금껏 말 한 번 섞지 않았다. 저는 되려 불편해졌고 그래서 오히려 피했다. 한 편으로는 어떤 아픔이 있길래 그런 짓을 한걸까. 이따금씩 궁금해졌다. 불편하면서도 뇌리에 박힌 '다자이 오사무'란 이름이 제 마니또 대상이 될 줄이야. 그가 더욱 불편해진 지금 제가 마니또란 것을 잘해낼 수 있을까부터 걱정하기 생각했다.


이어지는 체육시간엔 족구 시합이 열렸다. 빠른 공의 동선을 단 순간에 파악해내는 다자이는 여유롭게 잘도 피했다. 그런 다자이를 보며 같은 팀 학생들은 탄성을 내질렀는데, 순간 모래 바람이 강하게 일었고 다자이의 눈 안으로 들어갔던지 커다란 손가락은 그의 눈을 가리며 몸을 굽히게 했다. 방심한 기회라 생각한 학생 한 명이 다자이에게로 공을 세게 날렸을 때, 다소 먼 거리에 있던 츄야가 급히 몸을 날려 받아냈다. 박수소리에 영문을 모르듯 몸을 일으킨 다자이는 눈 앞의 츄야에 상황을 빠르게 파악했다.


"아ㅡ 모양 빠지게 요만한 민달팽이 츄야가 나를 구한 건가, 매우 굴욕적이네" "하ㅡ?! 뭐라고? 살려줬더니 그 딴 말이 하고 싶냐?" "그거야 우리 팀이 많이 살아야 이길 확률이 크니 그런 게 아닌가" "뭐라고? 이 청고등어가! 말 다했냐!?" 한 마디도 안지는 그에 몸을 들이대려던 츄야를 말린 건 학급의 일원들이었다. 할 수 없이 흘겨보며 본인의 팀에게 공을 던진 츄야는 왜 하필 마니또 이름에 다자이가 나와서 이런 시련을 주는 거냐며 운명에 탓했다. 기분 나쁜 중에 나온 청고등어란 말에, 다자이는 의외로 기분 나빠하는 느낌이 그닥 없어보였다. 되려 그 상황이 좀 웃겼던지 고개를 뒤로 하고 풋 웃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화가 치밀었던 그 일 이후로 조금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마치 다자이와 허물없이 대화하게 된 것 같았달까. 싸운 만큼 가까워진다고 했던 어느 말이 떠오른다. 물론 가깝다고 하기엔 애매한 사이라지만 거리감은 확실히 줄어든 듯 했다. 좁혀진 거리감은 저에게 불편했던 학교 생활로부터 익숙해지는 느낌을 가져다주었다.

하교시간이 지나고 집으로 돌아오며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곱씹어보았다. '날 싫어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말하는 것 보면 싫어하는 것도 같고. 헷갈린단 말이야' 무심코 담배를 꺼내 물려다 담배는 몸에 해롭다고 만류하던 다자이를 떠올렸다. 적어도 지금만큼은 자신의 마니또 대상이기에 그의 의견을 따라줘야겠다는 책임감이 들어 도로 주머니에 우겨넣은 후, 그가 '건강'한 자살을 원한다던 얘기가 떠올라 급히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날 이후, 다자이는 등교 후 신발장 위의 개인사물함을 열 때마다 매일같이 다르게 쓰여 있는 메세지카드와 놓여있는 비타민 젤리를 꺼내 들었다. 비타민 젤리가 실상 제 취향은 아니었지만 메세지카드를 읽을 때면 입가에 작은 미소가 드리우곤 했다.

기나긴 수업이 끝나고 원하는 책을 읽으려 도서실 문을 연 츄야의 눈으로, 아늑한 빛줄기가 내리는 책상에 앉아 차분히 책장을 넘기는 다자이의 모습이 들어왔다. 스크린이 씌워진 것 마냥 그의 모든 형상이 빛나보였다. 그가 시선을 느꼈던지 고개를 들려하자 츄야는 반사신경으로 다급히 책이 세워진 원목 책장 사이로 몸을 숨겼다. 츄야는 고개를 흔들며 애써 그런 생각을 무시하곤 원하던 책을 찾고 있었다. 다자이도 다시 독서에 집중했다. 도서실을 찾은 학생은 별로 없을 시각이라 내부는 한적하고 고요했다. 괜시리 책장 사이로 힐끔힐끔 보게 되는 다자이는 여전히 제 눈에 빛이 났다. 메세지카드와 비타민 젤리는 잘 챙긴 건지 문득 궁금해지다가도 다시금 도서실에 온 목적을 위해 서둘러 책 찾기에 집중했다. 원하던 책은 하필이면 키가 닿지 않는 위치에 세워져 있었다. 발꿈치를 들어 손을 뻗어봤지만 높게만 느껴지는 통에 한 숨을 턱 내쉬는 사이, "풋" 언제 왔는지 모를 다자이가 뒤에서 그 모습을 보곤 살짝 비웃었다. "츄야는 사이즈가 쬐끄만해서 맘대로 책을 가져다 보긴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겠군. 땅딸막 꼬마를 위해 내가 꺼내주겠네" 기분이 안좋아진 츄야는 됐다며 거절했지만 제 말을 무시한 그는 기어이 츄야가 원하던 책을 가볍게 꺼내어주었다.


키가 작다고 무시당한 것 같아 저기압이 된 츄야는 애써 기분을 억누르며 앞서 나가 자리에 착석했고, 뒤따라온 다자이는 자신의 책을 들어 츄야의 맞은 편 정면으로 걸어가 앉았다.


"여기가 더 잘 읽힐 것 같네." "뭐야! 넌 사람 괴롭히는 게 취미냐?" "아니, 츄야 괴롭히는 게 취미라네" "하..너랑 숨쉬는 공기도 아까우니까 그냥 내 앞에서 사라져줬으면. 언제 자살하냐?" "지금은 흥미로운 일이 생겨서 잠시 보류중이야. 좀만 참게나"


놀리는 게 재밌다는 듯 웃는 표정에, 몇 분 전 그에게서 빛이 났다는 모든 생각을 취소하고 싶어진 츄야는 마니또 제비뽑기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아쉬움을 느꼈다. 마니또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학생에겐 남은 학기동안 화장실 청소를 맡기겠다는 담임선생님의 엄포에 그간 다들 몰래 몰래 열심히였다. 그런 그들에 지지 않기 위해 노력은 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이따금씩 저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그의 행동과 발언을 볼 때면 그냥 포기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때마침 가는 방향이 같으니 하굣길을 함께 하자는 다자이에 또 얼마나 놀림을 당할까 걱정된 츄야가 이래저래 그를 따돌곤 집에 돌아가며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다. 같은 반 학생들은 모두 저를 "나카하라군"이라고 불렀고, 다자이 역시 다른 친우들에겐 이름 끝에 '군'을 붙이곤 했으나 츄야에게 만큼은 이름 부르는 법이 달랐다.

츄야ㅡ 자신을 부르던 그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목소리와 말투엔 장난기가 서려 있어도 부드럽고 차분한 톤에 이상하리만큼 기분이 좋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 "그냥 목소리가 좋은거야. 목소리가!" 츄야는 재차 머리를 흔들어 생각을 지워냈다.


오전부터 다자이는 싫은 소리를 내질렀다. 실장으로서 피할 수 없는 일을 맡게 되었던 것. 수업이 끝나고 모든 이가 집으로 돌아간 시각, 제 앞에 놓인 두꺼운 종이를 확인하곤 늘어지는 표정을 지었다. 츄야는 잠시 담임선생님께서 맡기신 일을 마무리하고 있어 교실엔 단 둘만이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있었다. 햇빛이 들어와 앉아 다행히도 어색한 공기는 없었다. 다자이에게선 말하지 않아도 하기 싫다는 느낌이 와닿았고, 츄야가 고개를 돌려 그를 봤다. 따분하게 하품하며 두꺼운 종이를 넘겨나갔던 그에게 실수로 들어가있던 칼날 파편이 날아 들었고, 그의 손목을 베곤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 짧은 소리는 놀라기보단 감탄사처럼 느껴진 제 귀가 이상한가 싶었으나 되려 놀란 츄야가 달려가 상태를 보니 상처는 생각보다 깊게 패여 있었다. 비상약을 찾아 양호실로 달려가려하자 그의 팔목을 다급히 잡은 다자이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으니 그냥 둬" "피가 안 멈추잖아! 지혈을 하던지 해야할 거 아냐!" 다자이는 여유롭게 자신이 감고 있던 붕대를 가리켰다 "이대로 죽기엔 적은 양의 피지만 새어나가는 느낌이 좋으니까 잠시만 이렇게 있겠네" 또 알 수 없는 말을 태평하게 늘어놓는 다자이의 말과 상반되게 손목에선 생각보다 많은 양의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교 츄야는 다급했다. 이대로면 현기증이 올 수도, 쓰러질지도 모를 일이었기에 저는 그의 마니또니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무릎 한 쪽을 꿇어 그의 긁힌 손목을 잡은채 상처로 입술을 가져가 대었다


"잠깐! 뭐하는 건가, 츄야"


다자이도 이 상황에 순간 놀랬던지 저를 말렸으나 지혈은 해야한단 말을 남기고선 상처를 빨아 뱉어냈다. 어째서인지 그의 손목에 자신의 입술이 닿은 순간 심장이 요동치듯 떨려왔다. 다자이 역시 츄야의 입술이 제 손목에서 움직일 때 손목을 타고 몸으로 흘러드는 야릇한 느낌을 삼켰고, 작은 탄성이 새어나왔다. 그 소리에 다급히 입술을 뗀 츄야가 애써 침착하며 다자이의 붕대 일부를 풀어 끊은 후, 깔끔하게 묶어내었다. 다자이는 매번 평정심으로 대하던 스스로를 잊어버리곤 무언가 말하려했던지 입술을 달싹이다 이내 거두었다. 

츄야 역시 무표정으로 잘 마무리해놓고선 다자이와 눈이 마주치자 저가 무슨 짓을 한 거냐며 귀까지 얼굴이 달아올랐다. "나..난 할 거 다 끝내서 이만 간다!" 그 때 였다. 다자이가 급히 일어나 츄야를 품에 안았다.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린 채, 저는 이미 그의 품에 안겨있었다. 포근하단 말론 표현할 수 없는 기분 좋은 온기가 느껴졌다. 벗어나고 싶지 않았지만 벗어나야만 했다. 그와 나는 같은 성을 가진 남자. 진전된다면 큰 후회를 불러올지 몰랐다. 몸을 쳐내고 후다닥 달려나가는 츄야에 다자이는 그가 나간 교실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도망치듯 내달리는 츄야의 심장이 쿵쾅쿵쾅 뛰어대고 있었다. 달리고 있어 숨이 차는 거라 믿고 싶던 저는 결국 깨닫고 말았다. 이 감정은 애증의 관계 그 이상이었단 것을. '그것도 장난이었을 거야' 방금 전 다자이가 했던 행동의 의미는 제 것과 다를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쨌든 츄야의 짝사랑은 시작된 터라 다자이를 보는 게 무척 불편해졌다. 이후로 츄야는 다시금 다가가지 못했고, 그가 장난치듯 다가올 때면 더욱 퉁명스럽게 밀어내며 넘을 수 없는 울타리를 세웠다.





땀이 나고 더우니 빨리 사라지라 그토록 바랐지만 막상 오니 아쉬운, 여름의 마지막날이었다. 토독토독. 하늘에서 떨어져 지표면에 닿는 빗방울 소리는 하나 둘 모여 가을의 시작을 알리고자 세찬 비를 몰고 왔다.

간간히 들리는 천둥소리는 여름이 끝남과 동시에 그와의 관계도 끝일 것 같다는 불길한 징조로 들려 귀를 틀어막았다. 그리고 가만히 눈을 감아보았다.

비가 내려서인지 서늘한 추위가 제 몸에 한기를 서리게 했다. 눅눅한 공기마저도 싫어, 얇지만 포근한 기모 이불을 가져다 허리까지 끌어 올렸다. 눅눅함이 한 층 가라앉는 느낌. 따스함이 제 몸을 감싸는 느낌이 들었다. 다자이에 안겼던 그 때처럼.




다음 날 여느 때처럼 아침 일찍 등교해 혹시 다자이가 오고 있진 않는지 몰래 확인하며 떨리는 손 으로 사물함 안에 직접 쓴 메세지 카드와 새로운 에너지바를 넣어두었다. "다자이 선배님!" 이라고 부르는 여학생의 목소리에 서둘러 몸을 숨겼다. 매번 여유로운 시각에 등교하던 그가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던지 일찍 등교했고, 이른 시간부터 그를 기다리며 대기했던 여학생은 그의 모습이 보이자 퍽이나 반가운 얼굴로 아는 체를 했다.


다자이는 누군지 모르는 눈치였지만, 다정한 미소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귀여운 후배님, 무슨 일이실까요?" "오늘이 포토데이라서..다자이 선배님과 사진 찍을 수 있나요?" "물론" 여학생은 높은 소리를 내며 그의 곁에 찰싹 달라 붙었고 팔이 긴 다자이가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직접 들어 셀카를 찍어주었다. "한 장만 더요!" 두 장을 연달아 찍고 난 뒤, 나머지 한 장은 자신이 준비한 선물과 함께 다자이에게로 내밀었다. 다자이는 선을 긋지 않고 고맙다 말하며 웃어주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상한 감정이 몸 안을 헤집는 느낌이었다. 자신에겐 그렇게 얄팍한 장난을 해대면서 얼굴조차 모르는 여학생에겐 그리 친절한 거냐면서. 왠지모를 질투심이 자라나는 것만 같았다. 남자이기에 여자에게 끌리는 건 지극히 정상일텐데 괜시리 그런 그가 미워졌다.



점심시간엔 다자이의 주위로 많은 학급친구들이 모여들었다. 커다란 하트모양의 선물상자를 자랑하듯 책상 위에 올려 둔 그에 다들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여학생한테 선물이라도 받은 거냐는 질문에 다자이는 연신 방글 웃기만 할 뿐이었다. 점심을 먹던 츄야와 다자이의 시선이 거리를 두고 마주했다. 여전히 미소를 지어보이는 다자이에 순간 사레가 들린 츄야가 애써 목을 축여 진정시키곤 빠른 식사를 마친 후 옥상으로 올라섰다. 약 올리는 것만 같아 분한 맘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잠시 바람을 느끼며 진정 시키려던 순간 "철컹!"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터벅터벅 발소리가 제 귀를 울렸다. 츄야는 바로 알아챘다. 인기척의 주인은 다자이라는 것을.


괜시리 초조한 맘에 눈을 딱 감아버렸다. 괜찮다며 암시를 걸 때쯤 다자이는 성큼 츄야의 곁에 다가와 있었다.


"내 얘기 들은 이후론 담배를 안 태우나보지" "뭐...남이사. 내가 태우든 말든 신경 끄고 그 여학생한테나 잘해주지 그러냐." "무슨 소린가?" "선물 자랑하고 유별나셨네. 청고등어씨. 우연히 지나다 봤는데 그 여학생 꽤 귀엽더만." "오해라도 하는 거 아닌가. 그리고.." 다자이가 츄야의 귓가에 입술을 가까이하곤 속삭였다.


"츄야가 더 귀엽다네"


귓속말을 하곤 웃어보이는 그의 따뜻한 숨결에 다시금 열기가 차오르고 가슴이 일렁일렁했다. '또 다시 못된 장난을 하는 거야' 바닥에서 제 발을 떨어뜨리려 안간 힘을 썼다. 잘 떨어지지 않는 발을 겨우 움직여 뒷걸음을 쳤다.

"내가 우습냐?! 어? 그딴 장난할거면 내 근처에 얼씬도 하지마. 내 눈에 띄지도 마! 진짜 열받으니까"  "!?.....츄야." 애써 그에게로 눈길을 주지 않았다. 정말로 화가 난  것 같았다. 조금의 시간이 흐르고 적막함 속 다음 말을 기다리던 다자이는 끝내 생각을 거두었다.



".......알겠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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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다자이는 교정 그 어디에서도 자취를 알 수 없게 모습을 감춰버렸다. 츄야의 마음이 그를 부정하자 이제 더는 살 가치조차 없는 것처럼 느껴진  것일까. 학급 친우들은 모두 그를 걱정했으나 모든 연락을 받지 않자 되려 다같이 불안해했다. 그가 사라진 것 만으로 학급의 분위기는 급격히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다시금 그의 존재성에 대해 실감했다. '정말 진짜 자살이라도 하러 간 건 아닐까. 설마 나 때문은..아니겠지? 아닐거야. 진심도 아니었는데 뭐. 그 녀석, 원래부터 자살매니아니까' 짧은 순간 제 탓은 아닐까 수없이 많은 생각을 하며 복잡하게 머릿 속을 헝클어놓았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친구들은 그의 집까지 찾아가봤지만 헛수고의 반복이었다. 


다자이가 사라진 후로 며칠이 지났을까. 임원 중 한 여학생이 옥상에 있던 츄야에게로 다가와 어렵게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다자이는 애초부터 츄야에게 호감이 큰 편으로 보였다고 했다. 츄야에게 다가갈 빌미로 담임선생님께 마니또를 제안한 것 같았다는 그는 마니또 대상으로 츄야가 나온 자신을 찾아와 몰래 바꿔달라고 부탁도 했다고. 츄야를 대상으로 다른 이가 마니또 일에 열중하다보면 되려 츄야를 좋아하게 되어버릴 것 같아 염려되어 미리 손을 써놓았던 듯 했다. 다자이는 또한 츄야의 마니또 대상이 저인 것을 알고 있던 것 같다고 했다. 츄야는 거짓말을 할 때 얼굴이 붉어져선 화내는 버릇이 있는데, 눈치가 빠른 다자이는 여러 번에 걸쳐 그를 관찰하다 저가 마니또 대상인 걸 알게 되었던 듯. 제 일에 대해선 주변에 잘 털어놓는 법이 없던 다자이는 저도 모르게 츄야에 대한 이야기를 임원들이 모여 있을 때 자주 꺼냈다고 했다. 교실로 돌아가자 다자이가 발견됐다며 교정 뒷편 산 어딘가의 나무에 목이 매달려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단 소리가 전해졌다. 반 학생들은 다같이 경악했다. 우는 소리와 함께 한 순간 분위기가 부산스러워졌고 누구 하나 그가 죽은 나무 곁에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의 유품을 정리하려 사물함에 연 학우들, 다자이가 점심시간에 자랑하듯 꺼내어보였던 하트모양 상자에 [열어보게]라는 글귀가 적혀 있어 상자를 연 친구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상자 안을 본 츄야의 시선은 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학생에게 받은 선물이라 생각했던 상자 안엔 자신이 매일 넣어두었던 간식거리들과 메세지카드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쌓인 위로 올려져 있던 여학생과의 폴라로이드 사진 뒤엔 몰래 지켜보던 츄야의 모습이 함께 담겨있었다. 다자이는 그 때 저를 몰래 지켜보던 츄야를 알고 있었다. 그 생각을 깨달았을 때 츄야는 비로소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말간 촉촉함이 눈가에 서릴까봐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왜 눈치채지 못했어. 왜...왜!!"


울부짖는 절규에 가까운 날카로운 소리가 땅을 치며 처절하게 울렸다. 바닥으로 널부러진 츄야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소리에 놀란 친구들이 달려가 그를 다독이며 정신줄을 놔버린 츄야를 양호실까지 부축해주었다.



이후 츄야는 그 때의 절규했던 그가 맞나 싶을 정도로 누가 봐도 이상하리만큼 멀쩡하게 다녔다. 사실은 애써 멀쩡한 척 해보였을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하루 하루를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한 달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순간이 찰나의 기억처럼 빠르게 지났다.



모든 수업이 끝나고 학원 건물을 나서자 눈 앞으로 이어지는 교정의 아름다운 가을이 눈에 들어왔다. 노을이 지는 것과 동시에 온통 황금빛과 붉은 빛으로 노오랗게, 빠알갛게 물들여 있었다. 이보다 아름다울 수 있을까 생각한 츄야는 그 동안 매일같 이 잠이 들기 전 어느 신에 터무니없는 소원을 빌었다. "다자이가 전처럼 자살기도에 실패했던 것이길 바랍니다. 제발 어느 날, 언제나처럼 내 눈 앞에 있게 해주세요" 이루어질 수 없을 소원에 모든 걸 걸 수 밖에 없었던 츄야는 벼랑 끝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듯 위태로웠다. 그런데 눈 앞에 뜻밖의 상황이 펼쳐졌다. 벤치에 앉아있던 가쿠란을 입은 남학생이 츄야의 눈에 들어왔다. 긴 다리를 여유있게 꼬고 헤드폰을 낀 채 음악감상에 심취해있던 그는 죽은 줄로만 알았던, 여태 제가 기다리던, 그 다자이 오사무였다. 아무 말이 나오지 않았다. 발걸음조차 떨어지지 않아 그대로 멈춰 서 버렸다. 시선만이 마주할 때쯤 바지를 털어내고 일어난 그가 츄야를 향해 세상 가장 본 적 없던 환한 미소를 보여주며 다가왔다. 살살 털어낸 손을 제게 내밀었다. 다자이가 맞냐며 눈을 비빈 츄야그 제 볼을 꼬집었다. 분명 꿈이 아니었다. 용기내어 맞잡은 두 손에 따스한 온기와 포근함이 둘을 이어주었다. 쌀쌀해지는 10월 중순의 어느 날에 다자이의 손은 무척이나 따뜻했다. 그는 살아있었다. 포개어 쌓인 은행잎과 단풍잎 위를 걸으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제 귀에 기분 좋게 들려 온 건 이번이 처음이라 느낄 때쯤 그가 말했다. "이번엔 생각보다 회복이 오래 걸렸다네. 미안. 많이 기다렸나?" "응..그 때 내가 멋대로 오해를 해서 미아ㄴ...!" 가만히 듣던 그가 더는 말하지 않아도 다 이해한다는 듯 츄야의 볼을 살짝 꼬집어보이곤 그의 볼을 찾아 부드럽게 입을 맞추었다. "사랑해 츄야." 부끄러움과 놀란 표정이 공존하던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조용한 그에 다자이는 대답을 재촉했다. "츄야, 대답은?" "나도.. 사랑해. 다자이" "그래, 그거면 된다네" 웃어보인 그가 눈을 꼬옥 감은 제 앞의 사랑스런 츄야의 얼굴을 보았다 .석양빛 머리색에 노을빛이 닿아서인지 츄야의 모든 것이 붉게 영글어 가고 있었다. 이번엔 살짝 떨리는 그의 입술 사이로 가만히 제 입술을 포개었다. 튕겨내기만 하던 예전의 츄야는 이제 없었다. 바랐던 그와의 진한 타액을 느끼며 혀가 촉촉하게 녹아들 때쯤 그가 살아있음을 확신한 츄야가 거짓이 아님을 확인받고자 감았던 눈을 떠보였다. 서로를 원하는 진득한 소리만이 적막함 속에 퍼져나갔다. 이윽고 다자이가 입술을 떼어내 눈 앞의 츄야를 바라보았다. 눈동자엔 촉촉한 물기가 맴돌았 고 다자이의 크고 기다란 손가락은 그의 눈가를 훔쳐내었다.


"설마 츄야가 내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일 거라곤. 츄야 우는 얼굴은 정말 못생겼어" 그 얘기에 츄야가 못생겨서 미안하다며 눈을 흘겼다. "그러니까 웃어주게. 좋은 걸로만 하루, 하루 채우기에도 지금은 아까운 시간이 아닌가" 조용한 그 목소리가 저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와닿아 마음 속에 코옥 들어와 앉았다. 다정한 미소로 저를 바라봐주는 다자이에 "그런 식으로 쳐다보지마" "무슨 식 말인가?" "그러니까..그게...그렇게 웃으면서 보지 말라고! ..설...레잖냐" 이런 오글거리는 말을 하게 된 스스로에 놀라며 뒷머리를 살짝 헤집은 그가 재차 붉어진 얼굴을 들키지 않으려 걸음을 재촉해 앞서 나갔다.

그 뒷모습을 가만히 서서 바라보던 다자이는 다시금 미소를 띄운채 가만히 그의 자취를 따라 걸었다. 이제부터는 온전히 '우리들의 시간'이었다.



fin.


썰에서 또 다시 소설이 되었습니다. 소주님께서 가을 소재를 넌지시 주셨어서 마지막 부분에 넣어보았습니다. 아름다운 분위기로 만드려했는데 쓰다보니 시리어스 해져버린ㅠ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주님 오늘 생일 축하드려요:)


그리고 다자이가 어떻게 살아났냐 궁금하신 분들이 계실 것 같아 써보면, 학스토 초반 내용에 다자이는 나무에 몇 시간동안 목을 매달려있다 아무렇 지 않게 잠을 자고 일어난 내용이 나옵니다. 내성이 생겨 목을 매달아도 다자이에겐 괴로운 것이 아니다!라는 부분을 인용해 보았습니다 :) 이번엔 좀 더 깊은 잠을 자다 상태가 안좋아져 정신을 놓은  사이, 조용히 누군가에 구해져 혼수상태였다 깨어난 것으로 생각해봤습니다.

BL취향주의/문스독 다자츄 위주 글 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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